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퀴리 (문단 편집) === 사망 === 그러나 말년에 마리는 계속된 [[방사능]] 연구 탓에 건강이 악화되어 [[방사선 피폭]]에 의한 [[빈혈#s-4.2.2|악성 빈혈]][* 과도한 피폭으로 [[골수]]의 [[조혈모세포]]가 모두 파괴되어 피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. 조혈모세포는 방사능에 가장 취약한 세포 중 하나다. 현대에 [[조혈모세포 이식]]을 할 일이 있으면 먼저 기존의 조혈모세포를 모두 죽여야 하는데, 이때 이를 위해 환자에게 방사선을 일부러 쬐게 하는 방법을 쓴다.] 등[* 말년에는 몸이 허약해져 백짓장 같은 얼굴로 겨우 숨만 쉴 정도였고, 두 눈은 거의 실명 상태였다. 이외에도 방사성 물질과 가장 자주 접촉했던 손가락은 마비되었으며, 상처 자리에서는 고름이 흐르고, [[발열|고열]]이 지속되어 몹시 괴로워하였다.]으로 몹시 고생하며 요양원을 전전하다가, 1934년 7월 4일 향년 66세로 사망. 죽기 직전에는 여러 생리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서, 인체의 발열 기능마저 정지할 정도였다.[* 마리는 이에 대해 “열이 내려서 편안해졌다.”고 말했다. 당시 마리는 계속되는 고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.] 하지만 방사능 노출도에 비하면 오래 살았는데, 그도 그럴 것이 마리는 라듐을 주머니에 대강 넣고 다녔던 사람이었다.[* 출처: [[과학동아]]. 마리 퀴리의 유품인 논문이나 요리책 등은 방사능을 띄고 있으므로, 보고 싶으면 보호의를 착용해야 한다. 퀴리 부부가 라듐을 분리할 때 1주일에 1렘씩 방사선을 뒤집어썼고 그 이후에도 방사선에 자주 노출되었는데, 이는 방사능 개발의 선구자의 숙명이었다. 휘하의 연구원들은 모두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켰다. 이는 [[스펀지(KBS)|스펀지]] 45회에서도 소개되었다.] 오히려 당시의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방사선 피폭자 치고는 더더욱 오래 산 셈이다.[* 장녀인 이렌은 58세에 방사능 사고로 인한 피폭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차녀인 에브 퀴리는 무려 102세 까지 천수를 누린걸 보면 방사능 피폭만 아니었더라면 마리도 꽤 장수했을지도 모른다.] 훗날 마리가 [[팡테옹]]에 안장될 때 시신에 대한 방사능 측정이 이뤄진 결과, 잔류 방사능이 거의 남지 않았기에 라듐에 의한 피폭보다는 1차대전 당시 부상병들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[[X선]]에 과다하게 노출되었기에 병을 얻었다는 설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